사랑하며/詩 와 글

오래된 우물

imoon 2011. 4. 5. 12:34
- 안도현


    고여 있는 동안 우리는

    우리가 얼마나 깊은지 모르지만

     

    하늘에서 가끔씩 두레박이 내려온다고 해서

    다투어 계층상승을 꿈꾸는 졸부들은 절대 아니다

     

    잘 산다는 것은

    세상 안에서 더불어 출렁거리는 일

     

    누군가 목이 말라서

    빈 두레박이 천천히 내려올 때

    서로 살을 뚝뚝 떼어 거기에 넘치도록 담아주면 된다.

     

    철철 피 흘려주는 헌신이 아프지 않고

    슬프지 않은 것은

    고여 있어도 어느 틈엔가 새 살이 생겨나 그윽해지는

     

    그 깊이를 우리 스스로 잴 수가 없기 때문이다.