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오래된 우물 2사랑하며/詩 와 글 2011. 4. 5. 12:36- 안도현
뒤안에 우물이 딸린 빈집을 하나 얻었다.
아, 하고 소리치면
아,하고 소리를 받아주는
우물 바닥까지 언젠가 한 번은 내려가보리라고
혼자서 상상하던 시절이 있었다.
우물의 깊이를 알 수 없었기에 나는 행복하였다.
빈집을 수리하는데
어린것들이 빗방울처럼 통통거리며 뛰어다닌다
우물의 깊이를 알고 있기에
나는 슬그머니 불안해지기 시작하였다.
오래 된 우물은
땅속의 쓸모없는 허공인 것
나는 그 입구를 아예 막아버리기로 작정하였다.
우물을 막고 나서는
나, 방 안에서 안심하고 시를 읽으리라
인부를 불러 메우지 않을 바에야 미룰 것도 없었다.
눈꺼풀을 쓸어내리듯 함석으로 덮고
쓰다 만 베니어 합판을 덧씌우고
그 위에다 끙끙대며 돌덩이를 몇 개 얹어 눌렀다.
그리하여
우물은 죽었다.
우물이 죽었다고 생각하자
나는 갑자기 눈앞이 캄캄해졌다.
한때 찰박찰박 두레박이 내려올 때마다
넘치도록 젖을 짜주던 저 우물은
이 집의 어머니,
별똥별이 지는 밤하늘을 밤새도록 올려다보다가
더러는 눈물 글썽이기도 하였을
저 우물은
이 집의 눈동자였는지 모른다
나는 우물의 눈알을 파먹은 몹쓸 인간이 되어
소리친다
아, 하고 소리쳐도
아, 하고 소리를 받아주지 않는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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