사랑하며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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오래된 우물 2사랑하며/詩 와 글 2011. 4. 5. 12:36
- 안도현 뒤안에 우물이 딸린 빈집을 하나 얻었다. 아, 하고 소리치면 아,하고 소리를 받아주는 우물 바닥까지 언젠가 한 번은 내려가보리라고 혼자서 상상하던 시절이 있었다. 우물의 깊이를 알 수 없었기에 나는 행복하였다. 빈집을 수리하는데 어린것들이 빗방울처럼 통통거리며 뛰어다닌다 우물의 깊이를 알고 있기에 나는 슬그머니 불안해지기 시작하였다. 오래 된 우물은 땅속의 쓸모없는 허공인 것 나는 그 입구를 아예 막아버리기로 작정하였다. 우물을 막고 나서는 나, 방 안에서 안심하고 시를 읽으리라 인부를 불러 메우지 않을 바에야 미룰 것도 없었다. 눈꺼풀을 쓸어내리듯 함석으로 덮고 쓰다 만 베니어 합판을 덧씌우고 그 위에다 끙끙대며 돌덩이를 몇 개 얹어 눌렀다. 그리하여 우물은 죽었다. 우물이 죽었다고 생각하자.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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산사랑하며/詩 와 글 2011. 2. 8. 21:20
- 함석헌 나는 그대를 나무랐소이다 물어도 대답도 않는다 나무랐소이다 그대겐 묵묵히 서 있음이 도리어 대답인 걸 나는 모르고 나무랐소이다. 나는 그대를 비웃었소이다 끄들어도 꼼짝도 못한다 비웃었소이다 그대겐 죽은 듯이 앉았음이 도리어 표정인 걸 나는 모르고 비웃었소이다. 나는 그대를 의심했소이다 무릎에 올라가도 안아도 안 준다 의심했소이다 그대겐 내버려둠이 도리어 감춰줌인 걸 나는 모르고 의심했소이다. 크신 그대 높으신 그대 무거운 그대 은근한 그대 나를 그대처럼 만드소서! 그대와 마주앉게 하소서! 그대 속에 눕게 하소서! 시대의 거친 흐름을 온 몸으로 버텨내며 거친 두다리로 견디어 내셨을 내심이 공감된다 2011.02.08 21:20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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그 사람을 가졌는가?사랑하며/詩 와 글 2011. 2. 8. 21:12
- 함석헌 만리 길 나서는 길 처자를 내 맡기며 맘 놓고 갈만한 사람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. 온 세상 다 나를 버려 마음이 외로울 때에도 '저 마음이야'하고 믿어지는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. 탔던 배 꺼지는 시간 구명대 서로 사양하며 '너 만은 제발 살아다오' 할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. 불의의 사형장에서 '다 죽여도 너희 세상 빛 위해 저만은 살려두거라' 일러줄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. 잊지 못할 이 세상을 놓고 떠나려 할 때 '저 하나 있으니' 하며 빙긋이 웃고 눈을 감을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. 온 세상의 찬성보다도 '아니'하고 가만히 머리 흔들 그 한 얼굴 생각에 알뜰한 유혹을 물리치게 되는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. 나는 그런 사람을 가지고, 그런 사람이 되려 하였던가? 2.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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연탄 한장사랑하며/詩 와 글 2010. 11. 20. 02:24
- 안도현 또 다른 말도 많고 많지만 삶이란 나 아닌 그 누구에게 기꺼이 연탄 한 장 되는 것 방구들 선들선들해지는 날부터 이듬해 봄까지 조선팔도 거리에서 제일 아름다운 것은 연탄차가 부릉부릉 힘쓰며 언덕길을 오르는 거라네 해야 할 일이 무엇인가를 알고 있다는듯이 연탄은, 일단 제몸에 불이 옮겨 붙었다 하면 하염없이 뜨거워지는 것 매일 따스한 밥과 국물 퍼먹으면서도 몰랐네 온 몸으로 사랑하고 한 덩이 재로 쓸쓸하게 남는 게 두려워 여태껏 나는 그 누구에게 연탄 한 장도 되지 못하였네 생각하면 삶이란 나를 산산이 으깨는 일 눈내려 세상이 미끄러운 어느 이른 아침에 나 아닌 그 누가 마음 놓고 걸어갈 그 길을 만들 줄도 몰랐었네, 나는